세거지 (世居之)

봉화정씨는 오늘날 현재 전국에 분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흩어진 원인은 태조7년(1398) 이방원의 난과 연산군 10년에 발생한 갑자사화와 무관치 않다. 대체적인 분포형태로 나타난 세거지를 크게 나누면 본향인 경상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강원도로 구분할 수 있다.

경상도는 봉화와 영주를 비롯한 예천・안동・울진에 분포하고 있고, 경기도는 평택・안성・양평・가평에 분포하고 있으며, 충청도는 충주・제천・음성・괴산・천안・아산・보은에 분포하고 있고, 전라도는 정읍・화순에 분포하고 있으며, 강원도는 춘천・원주・양구・간성・횡성 등에 분포하고 있다.

 ○ 봉화 
선대로부터 시조始祖(鄭公美)께서 본관 봉화현 호장을 역임하면서 3세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세거하였다. 그 후 양경공 후손인 10세 백은공伯隱公(鄭함)께서 갑자사화를 피해 봉화 봉성면 일대로 이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 영주 

영주는 우리봉화정씨가 득세한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3세 조부(均)께서 구성공원 남쪽 기슭으로 이주하여 4세 염의공(云敬)과 5세 문헌공(道傳) 형제 참판공(道存)과 판윤공(道復)께서 태어난 곳이다. 5세 판윤공(道復)이 이방원의 난 후 낙향하여 은거하였으므로 한성동이라고 불러지기도 하였다. 그 후손들이 이 일대 인근에 산재散在하여 집성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

 
○ 예천 
11세 정국로鄭國老조부께서가 금산군수金山郡守(金泉)를 역임하면서 정착한 곳으로써, 공의 후손들과 판윤공 후손들이 혼재하여 풍양면 청곡・예천읍 생천・감천면 진평・상하리면 등에서 집성을 이루고 있다. 

 
○ 울진 
12세 정담鄭湛조부께서 연산군 갑자사화를 피하여 도성과 먼 곳으로 은신 정착한 곳으로써, 봉화정씨 중 가장 많이 번창하여 집성을 이루었다.

 
○ 평택・안성 
7세 정래鄭來조부께서 용인현령龍仁縣令을 역임한 후 정착하여, 그 후손들이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와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점차 경기전역으로 확대 되었다.

 
○ 김포・양평 
7세 정속鄭束조부께서 직산현감을 역임하시고, 8세 양경공(文炯), 9세 참판공(淑墀)의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그 후 양경공의 둘째 아들 서령공(淑墩)은 김포로, 철원공(淑垠)은 양평군 개군면으로 이주 정착하여 집성을 이루었다.

 
○ 양구・화천・고성・횡성 
부정공(仁炯)의 후손인 9세 통덕랑 자현自賢조부께서 연산군 갑자사화를 피해 산중으로 은신 양구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점차 인근 화천・고성・횡성 등으로 확대 집성을 이루게 되었다.

 

○ 전라도 정읍・화순 
양경공(文炯)의 장파 후손들이 역시, 갑자사화를 피하여 남하 산중으로 은거한 것이 정착계기가 되었으며 집성을 이루게 되었다. 

 
○ 충주・제천・보은 
중추지역은 양경공(文炯) 후손인 11세 병판공(熙老)의 아들 정락鄭洛조부께서 충주 앙성으로 이주 정착하여 대성을 이루었고, 점차 제천・원주・음성 일원으로 세거지가 확대 되었다. 보은 지역은 부정공 후손인 9세 숙원叔垣께서 덕산현감을 역임하시고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